뉴욕에서 리마까지 8시간의 비행
남미의 대표적 항공사인 'LAN 항공' 을 이용하여
리마에서 1시간여의 비행 끝에 드디어 도착한 쿠스코.
고지대인 쿠스코의 명성에 걸맞게
구름과 맞닿아 있는 산들이 창문밖으로 보인다.
페루 남동부 쿠스코 주에 있는 도시이다. 80 km 북서쪽으로 마추 픽추가 있으며, 안데스 산맥 사이의 해발 3600m에 있다. 현재 인구는 약 30만명이다.
쿠스코는 케추아어로 "배꼽"을 의미하고 타완팅수우유(Tawantinsuyu, 잉카 제국의 정식 명칭)의 수도이며, 문화의 중심지였다. 지금도 페루에서 가장 유수한 도시 중의 하나이다.
1200년대부터 1532년까지 쿠스코는 잉카 제국의 수도였다. 쿠스코의 거리는 성스러운 동물인 퓨마를 본떠서 만들었다는 설이 있지만, 증명된 학설은 아니다.
전설에 의하면 태양신이 자신의 아들과 딸을 티티카카 호수에 내려보내며 황금 지팡이가 꽂히는 곳에 정착하라고 하는데 그들이 쿠스코에 지팡이를 박고 도시를 건설했다고 한다.
잉카인들은 하늘은 콘돌, 땅은 퓨마, 땅속은 뱀이 지배한다고 믿었는데, 이러한 세계관에 따라 쿠스코는 도시 전체가 퓨마 모양을 하고 있다
잉카의 통치 하에 우린(Urin)과 하난(Hanan) 두 지구로 나뉘어 각각 또는 두가지로 구분할 수 있었다.
4개의 지역 이름과 위치는 Chinchasuyu(북서), Antisuyu(북동) Qontisuyu(남서), Collasuyu(남동)였다. 도로는 각 지역에서 해당 제국의 영역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각 지역 지도자들은 마을에 집을 짓고 매년 일정 기간 쿠스코에 살아야 했다. 파차크티크 지배 후 잉카 사람이 죽으면 그 호칭은 아들이 물려받고, 그 재산은 그 친척에 의해 지배되는 자치 단체에 수여되었다. 호칭을 유지하는 사람은 자신의 사후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토지를 소유하기 위하여 새로운 집을 짓고 새 땅을 제국에 추가할 필요가 있었다.
잉카의 전설에 의하면, 쿠스코는 사파 잉카의 파차크티크에 의해 건설되었다. 그는 쿠스코 왕국을 활기없는 도시에서 거대한 타완팅스우유 제국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파차크티크 지배 이전부터 마을은 점차 유기적으로 발전했다. 그것은 정해진 계획에 따라 건설된 두 개의 강이 마을을 둘러싸듯이 부어 개조되었다.
1527년 와이나 카파크 사후, 쿠스코는 아타 후 알파의 지배 영역이 되었다. 1532년 4 월, 도시는 키파이판 전투에서 아타훌파에게 점령되었다. 그 19 개월 후, 마을은 쿠스코 전투를 거치며, 프란치스코 피차로가 1534년 3월 23일 도시를 공식적으로 발견하고 ‘매우 고상하고 위대한 도시 쿠스코’라는 이름을 붙였다.
식민 지배의 흔적은 도시의 건축물에 여전히 남아있다. 침략 이후, 스페인 식민지 사람은 수많은 잉카의 건축물, 사원, 궁전을 파괴했다. 그들은 파괴하고 남은 벽을, 신도시 건설의 기초로 사용했다. 그리고 많은 교회, 수도원, 성당, 대학, 주교구를 건설했다. 잉카 전통 건축 방식에 스페인의 영향이 융합된 건물이었다. 스페인 사람은 토착 사원을 가톨릭 교회, 궁전 그리고 그들의 주택으로 개조했고, 키르케 구조에 타완팅스유(Tawantinsuyu)를 가미하여 쿠스코 건축물은 중후한 문화가 융합되었다. 잉카가 키르케 구조 위에 건물을 세운 것을 스페인인들은 잉카에 의해 세워진 거대한 바위 위에 건축물을 세웠다. 스페인식 건축물은 잉카에 의해 만들어진 거대한 돌담 위에 만들어져 있다. 이 잉카 시대의 석조 건축물은 바위와 바위 사이에 “면도날 하나 허용하지 않는” 촘촘하고, 정교함이 있었다. 또한, 주위에는 사크사크와만 유적과 켄코 유적 등 많은 유적이 흩어져 있다.
쿠스코는 안데스 지역에서 스페인 식민지와 기독교 포교의 중심이 되었고, 농업, 목축, 광업과 스페인과의 무역 덕분에 쿠스코는 번창을 할 수 있었다.
쿠스코를 방문한 여행객은 쿠스코의 중앙광장인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를 자주 찾게 된다.
관광객들이 많은 곳이자 광장을 중심으로 한 주변지역에 주요 잉카-스페인 유적들이 위치해 있으며 많은 식당과 여행사, 호스텔 등도 이 주변지역에 위치해 있다.
사진 오른쪽 하단에 보이는 곳이 아르마스 광장과 대성당, 그리고 예수회 성당
잉카제국 당시 이 지역은 눈물의 의미를 담고 있는 우아카이파타(huacaypata)와 행복을 뜻하는 쿠시파타(cusipata) 로, 사피(saphi) 강을 경계 삼아 나뉘어져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식민지시대를 거쳐 우라카이파타는 아르마스 광장으로, 쿠시파타는 레고시호 광장으로 변화되었다
광장 한 가운데에는 잉카제국의 수도를 쿠스코로 정한 황제, 망코 카팍이 광장과 그 주변을 내려다 보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잉카의 유적이 아닌 그 흔적 위에 세워진 스페인 식민지 양식의 건물과 성당들 뿐이니 문화적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쿠스코인들의 비애감 또한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쿠스코 대성당
1654년 잉카시대의 비라코챠 신전 터에 세운 것이다.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에 위치해 있으며 100년 동안 건축하였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세운 대성당이지만 쿠스코 시민중 카톨릭 신자가 늘면서 시민들의 정신적 안식처가 되었다.
하지만 실상은 잉카인의 강제 개종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웅장한 건물로 1559 년에서 1654 년까지 95 년에 걸쳐 건축되었다.
대성당의 중앙제단은 은 300톤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지붕에는 1659년에 설치된 남미에서 가장 큰 높이 2.15m, 무게 5980kg의 "마리아 앙골라의 종"이 설치되어 있고, 그 울림은 반경 40m 앞까지 퍼진다고 한다.
또한, 이 교회에서 유명한 것으로 검은 예수 동상이 있다. 긴 세월동안 촛불에 그을려 십자가에 걸린 예수 상이 검게 변한 것으로, 교회 보수 공사시에도 씻지 않고 그대로 보존해 '블랙 지저스 "라는 이름으로 사랑 받고 있다. 1년에 한 번, 10 월 기적의 행렬때 이 동상은 시민과 함께 거리를 누빈다고 한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유럽의 광장문화와 종교문화가 그대로 옮겨져 있는 아르마스광장.
쿠스코의 모든 여행은 이곳 아르마스광장이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된다.
행사와 모임, 만남의 중심이 광장일 수 밖에 없는
유럽의 문화가 광장의 문화라는 이유를 이곳 쿠스코에서도 느끼게 된다.
광장에 있는 대성당도,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모든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이른 아침
대성당 안을 조심스레 들어가 본다
(원래는 입장료가 있다고 하는 것 같은데, 아침 미사시간이 겹쳐서 인지, 그냥 무료입장 ^^)
성당안의 웅장함과 경건함이 그대로 몸에 전달되는 느낌.
자연스레 나 또한 가족의 건강과 행복, 풍요를 기원하게 된다
성당안에는 많은 제대가 있어,
여기저기에서 기도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중앙의 제대에서는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쿠스코인들이 미사를 드리고 있다.
특이한 것은 한 방향으로 제대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각기 정방향, 측면방향 등으로 제대가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미사를 드리고 있는 이 제대도 건물의 측면 방향으로 미사가 진행되고 있다
성당 한 쪽에 있는 그리스도 최후의 만찬 벽화.
특이한 것은 만찬의 음식이 잉카제국 전통음식인 '꾸이(쥐 요리)'와 치차 라는 점.
나름 자신의 문화를 종교에 투영한 모습이다.
그리고 배신자인 유다의 얼굴 대신 침략자 피사로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다양한 벽화와 조각으로 이루어진 제대의 아름다움.
쿠스코 대성당의 명성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장면들.
예수회 성당 (라 꼼파냐 데 헤수스 교회)
예수회가 1571년 세운, 쿠스코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
당시 카테드랄보다 화려한 교회의 건설은 인정되지 않았고, 쿠스코의 대주교 또한 건설에 반대를 했지만, 예수회는 교황의 건설 허가를 받아 대성당 바로 옆,
잉카 제 11 대 황제 와이나 · 카팟쿠 신전 터에 교회를 건설했다고 한다.
아르마스 광장의 측면에 있는 예수회 성당도
쿠스코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장소.
대성당보다는 규모가 조금 더 작고 높이 건축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배자로서 피지배국의 전통을 허물고 세운 아픈 역사의 증거물이기도 하다
‘인티 라미(Inti Raymi: 태양제)’
잉카족에게 새해 첫 날은 해가 가장 짧은 동짓날, 6월 21일이었다.
3일이 지난 24일이면 우리나라의 추석처럼 식량과 제물을 모아 태양신에게 제를 올렸는데, 그것이 바로 인티 라미다.
쿠스코의 동쪽 산에 있는 거대한 요새인 SAQSAYWAMAN에서는 해마다 6월이면 잉카의 영화를 잊지 못하는 잉카의 후예들이 모여 태양제를 지내며 지난날의 영광을 되새긴다. 태양신에게 그해의 풍작을 기원하는 태양제는 옛날에는 왕이 직접 사제가 되어 주관했고, 이때 사람들은 들판에서 노숙을 했다고 한다.
또한 축제 기간에는 피를 깨끗이 하기 위해 다른 음식은 먹지 않고 땅속에 묻어 짚으로 불을 피워 구운 감자만을 먹었다고 한다.
아침 7시 왕과 여왕이 도시 한가운데의 광장으로 걸어나와 왕은 캐츄아어로 설교를 하고 지팡이를 쿠스코시의 시장에게 건네준다. 팡파레가 울리면서 왕과 여왕은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태양제를 올리기 위해 SAQSAYWAMAN으로 향한다.
태양제는 왕과 여왕이 입장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먼저 여왕이 옥수수 등의 곡식을 두 손에 받쳐 든 시녀들과 함께 들어온 다음 왕은 화려하게 조각된 금빛 의자에 앉아 입장한다.
왕은 제단에 산꼭대기의 태양을 향해 양손을 높이 들어올려 경배하게 된다. 제사장이 금잔과 은잔에 잉카의 전통술인 '칫차'를 가득 부어 왕에게 바치면 왕은 은잔을 머리 위로 높이 쳐들어 태양에게 바친 후 주변에 칫차를 뿌리고 나머지를 마신다.
여자들은 손에 받쳐 들었던 곡식을 불에 태워 태양에게 바치게 된다.
이후 흠이 없고 건강한 검은 라마 한 마리가 선택되어 제단 위로 올려지고, 제사장이 잉카의 칼인 예리한 투미로 라마의 배를 단숨에 가르고 심장을 Rm집어내 하늘 높이 치켜 올린다.
때 라마의 심장이 꿈틀거려야 길조라고 한다. 왕은 심장 겉에 나타난 핏줄 모양으로 다음해의 수확을 점치는데 심장 역시 곡식과 마찬가지로 불에 태워져 태양에게 바쳐진다.
아르마스 광장 근처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차량도 통제되는 상황.
심지어 광장 곳곳은 관람대를 설치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쿠스코에 도착한 첫날 이곳의 풍경은 나에게 생경하다.
무슨 일이지? 하는 의문.
그런데 알고 보니 쿠스코 최대의 축제기간인 '인티 라미' 기간 이라고 한다
사전답사기간과 맞물린 우연한 기회.
그들의 축제가 흥겹다
태양의 길(아르마스 광장)을 중심으로 대형 퍼레이드가 벌어진다. 일명 ‘시민의 행진(Desfile civico)’이다. 쿠스코 일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민속 의상을 입고 전통 군무를 추면서 행진을 한다. 그룹 수는 무려 200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그 광경을 실제로 보니 민족 최대의 축제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이 축제기간이 무려 일주일이라고 하니, 축제를 즐기는 그들의 문화가 부러운 감도 있다.
내가 본 기간에는
첫 날은 초등학생이
다음 날은 중고등학생이
민속의상을 입고, 전통 악기에 맞춰 흥겹게 축제에 참여하고 있다.
관람하는 사람들도 절로 흥이 나는 축제!!! ^^
주변은 수많은 사람들과
먹거리, 입을거리, 사진기사 등등의 노점들로 가득하다.
세계 어느나라든 축제의 모습을 비슷하네요
마츄픽츄 답사를 마치고 늦게 도착한 아르마스 광장
쿠스코의 모든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온 이 느낌은 뭐지?
이렇게 많은 노점상은 뭐지?
노점상보다도 훨씬 많은 남녀노소의 이 사람들은 갑자기 이 밤에 왜 나온 거지?
아르마스 광장에 도착해 보니
그 이유를 알겠네요.
축제의 마지막 밤.
인기 가수의 공연이 아르마스 광장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많은 사람도 놀랍지만
대성당 앞의 공연장은,
마치 콘서트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열기가 후끈하다.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특성인 줄 알았던 "떼창" 이
아르마스광장에 울려퍼집니다.
축제의 밤은 역시 아름다운 건가요?
오호 축제의 와중에
눈에 띄는 한 장면이 있었으니
한국여자 여행객이 열심히 노점상과 흥정을 하고 있네요.
흥정하는 모습이 사뭇 진지합니다.
'꽃보다 청춘' 이라는 프로그램 때문에 페루가 예전보다 많이 알려지기는 했지만
한국인 여행객이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곳은 아니기에,
한국 여행객을 쿠스코에서 쉽게 보지는 못합니다.
아~~~ 물론 불친절하고 맛까지 없는 한국음식점 "사랑채"에는 한국인들이 모입니다만 그곳은 완전 비추입니다
(오늘이 무슨 날이냐는 저희의 물음에, 사장님 왈 " 사람이 많이 모이는 날이에요" 로 끝!!!
축제의 마지막이라 공연도 하고, 불꽃놀이도 합니다라는 말씀도 안해 주심. 축제의 하이라이트 "불꽃놀이"도 못 볼 뻔 했다.)
형형색색의 조명과 함께
공연의 분위기는 무르익어 갑니다
그렇게 공연이 진행되다가
오~~~~호
이건~~~~~
그렇습니다.
축제의 하이라이트
불꽃놀이가 시작되네요.
아름다운 대성당을 배경으로
쿠스코의 밤하늘을 불꽃들이 아름답게 수 놓습니다
이곳 저곳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이곳 페루까지 업무출장을 온 것도 우연이었습니다만,
이런 아름다운, 그리고 살아 숨쉬는 그들의 문화를 접하게 된 것도
저에게 주어진 잊지못할 추억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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