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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접하게 된/책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 마크 해던

by 심심한 똘이장군 2018. 3. 18.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이라는 제목, 그리고 삼지창에 찔려있는 개의 죽음이라는 표지삽화만을 보고는 처음에는 추리소설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웰링턴이라는 개의 죽음에서 시작하는 전개또한 추리소설로 짐작하게 나를 속였다.


이 책은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을 계기로 15세의 크리스토퍼가 한 단계 성장해 나가는 성장소설이다.

청소년의 성장이야기는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단골소재이다.

'19세', '완득이'에서 볼수 있 듯 자신의 닫힌 세계를 벗어나 용감하게 외부세계로 발을 디뎌 나가는 전형적인 성장소설의 틀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의미있는 것은 일반적인 청소년의 성장소설이 아니라는 점이다.

'닫힌 세계'라는 의미가 단순히 자아의 한계가 아니라 자폐라는 특수성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자폐아인 주인공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겪고, 사건들을 경험하고 해결하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반적 성장소설과는 차별될 수 밖에는 없다.

자폐아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시각은 어느 일정한 지적수준에 멈춰서 있는 두뇌를 생각하게 된다. 그런 시각을 바탕으로 바라본 자폐아에 대하여 '성장'을 논한다는 것은 특이할 뿐만 아니라 분명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크리스토퍼 또한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과 행동양식,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지, 그것들을 아예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집과 학교, 그리고 한 두 블럭도 되지않는 거리만을 다니던 크리스토퍼가

개(웰링턴)의 살인자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의 특별한 특성들을 극복해 나가면서 혼자서 엄마를 찾기 위해 자신이 아는 세상의 저 넘어인 런던까지 가게 되고,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본인이 가장 잘하고 원하는 수학레벨A 시험을 보게 되는 과정에서,

크리스코퍼는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행동의 틀을 확장해 나간다.

 

 


크리스토퍼는 사고의 접근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의 접근방법이 낯설기만 하다.

그리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사람을 상대할 때 당황하는 것에 대하여,실상 그 생각은 크리스토퍼가 사람들로부터 당황하게 되는 이유일 텐데, 

"나는 사람들이 왜 당황하는지 안다. 첫 번째는 사람들이 입으로 말하지 않으면서도 너무 많은 말을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사람들이 종종 은유를 써서 말하기 때문이다."

문득 정상적인 우리들도 비언어적인 요소들과, 직접적이지 않은 표현들로 인해 상처받고 당황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동의하게 된다. 



내세인 천국을 말하는 사람들(종교)에 대해,

크리스토퍼는 생명에 대한 갈망을 놓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나는 사람들이 천국을 믿는 이유가 죽음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고, 생명을 연장하고 싶기 때문이며, 다른 사람이 자기가 살던 집에 이사 와서 자기 물건들을 버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천국이라는 개념이 성립하지 않아야 되는 것이니까...

아~~~크리스토퍼는 정말 천재일지 모르겠다. 

인생의 끝에는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내세에서의 삶에 대해 왜 이쪽 생에서 고민하고 염려를 해야 할까를 다시한번 생각케 한다.



"내가 수학을 좋아하는 것은 수학이 안전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내가 수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수학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그 문제들은 어렵고 흥미롭기 때문이며, 또한 끝에는 언제나 정답이 있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하지만 인생은 수학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인생의 끝에는 정확한 답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크리스토퍼가 진정으로 슬퍼서 우는 경우는 소설속에 등장하지 않는다.

자폐라고 해서 슬픔을 모르지는 않을텐데 말이다.

그래서 선생님은 말한다. 

슬프면서도 슬프다는 걸 알지 못할때가 있다고, 그건 진정으로 슬프지 않은 것이 아니라고...

 

"그러나 가끔 우리는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마음이 슬퍼질 때가 있고, 다른 사람에게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잖아. 우리는 비밀을 갖고 싶어 하니까. 그런데 가끔은 슬프면서도 정말로 슬프다는 걸 알지 못할 때도 있지. 그래서 우리는 슬프지 않다고 말하지. 그러나 사실은 마음이 슬프거든."

 

우리고 마찬가지다.

조금 더 슬퍼하는 것이,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담담하지 않거나 대범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텐데,

담담하다, 대범하다는 표현뒤로 슬픔을 숨기려 한다. 



"인생에 있어서 사람들은 많은 결정들을 하게 되고, 만약 어떤 것도 결정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여러 일들 중에서 이것을 할까 저것을 할까 택하느라 시간을 소모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것을 왜 싫어하고, 또 어떤 것을 왜 좋아하는지 이유가 있는 것이 좋다." 



과거의, 현재의, 미래의 일에 대한 것이 감정이라는 시간적 개념과

가슴이 아니라 머리에 그려지는 것이 감정이라는 공간적 개념은

여전히 아리송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들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은 감정이 있고 컴퓨터는 감정이 없기 때문에 사람은 컴퓨터와 다르다고 생각하다. 하지만 감정이란 단지 내일 아니면 내년에 일어날 일, 혹은 일어났던 일을 대신해서 일어날 수도 있었던 일이 머릿속의 스크린 위에 그려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게 만약 행복한 그림이라면 사람들은 웃을 것이고, 슬픈 그림이라면 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느끼는 것은 슬픔이라고, 

저런 상황에서 느끼는 것은 기쁨이라고,

감정도 교육되어지고 이전 세대에서 이후 세대로 이전되어지는 것이라면,

가슴이 아니라 머리속의 잔상일수도 있겠다.

크리스토퍼는 행복도 슬픔도, 그렇게 머리속의 잔상으로만 기억하고 있는가 보다.


 

크리스토퍼는 본인만의 논리적 생각과 행동을 통해서 이미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미래를 헤쳐나갈 것이다.

15세라는 또하나의 벽을 넘어서.!


"나는 내가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혼자 힘으로 런던까지 갔고, '누가 웰링턴을 죽였는가'라는 미스터리를 풀었으며, 엄마의 집을 찾아냈고, 게다가 용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책까지 썼다. 그 말은 내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