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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접하게 된/책

바나나 제국의 몰락(NEVER OUT OF SEASON) - 롭 던

by 심심한 똘이장군 2019. 9. 29.

우리는 알게 모르게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의 시대에 살고 있다.

2019년 7월 기준 77억명으로 추계되는 전 세계 인구가 소비하는 각종 공산품의 공급은 그 자체로 막대한 공장을 필요로 했고,

이에 맞추어 대규모 자본에 의한 글로벌 생산기업들이 등장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대규모 공산품 생산체제에서는 필연적으로 환경 오염과 빈부의 격차를 야기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농업측면에서는 어떤 상황일까?

식량 소비에 있어 빈익빈 부익부가 심하게 불균형하다는 문제점으로 인해 식량이 쓰레기로 남아도는 곳과 부족으로 신음하는 곳이 존재하지만

77억명이라는 인구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식량공급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수렵을 통한 이동의 시대에서 한 지역에서 집단거주를 하게 되면서 자연적으로 식량의 생산문제는 인류의 화두가 되어 왔다.

그리고 대규모 인구를 먹여살리기 위한 농축산업의 진행방향도 대규모 생산에 포커스를 맞추게 되었다.

 

농업이 전파되면서 전 세계에서 소비하는 식량의 다양성이 감소했다.

농업이 세계화되자 다양성은 더욱 감소하고 균일화되었다.

어느 지역이나 똑같은 작물을 재배한다.

사람들이 주식으로 삼는 식량의 종류가 줄고 있다.




   

대량 생산을 위해 생산성(단위 면적당 식량 생산량)이 높은 작물을 찾고 그 작물에 매달리다 보니 종의 다양성이 훼손되고 소수의 종만이 재배되는 소품종 대량생산의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대규모의 지구 인류를 먹여살리기 위한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산업화 과정에서 긍정적 결과외에 뜻하지 않은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처럼 대규모 농업의 산업화 또한 부작용을 야기하고 있다.

 

작물에 닥친 위험은 우리가 농업을 단순화한 정도에 정비례한다.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작물은 한 지역에서 재배되다가 병충해를 피해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가는 경로를 걸었다.

하지만 전 세계가 비행기와 배로 연결된 지금은 병충해가 작물의 이동 속도를 따라잡고 있다.

 

카카오, 감자, 커피원두, 밀 등도 농산물이 산업화하면서 생산성이 높은 단일품종화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 어떤 병충해가 등장할 경우, 초기에 이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병충해의 창궐은 지역의 해당 작물을 광범위한 지역에서 초토화하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감자가, 밀이, 카카오가 한 지역에서 초토화 된 경우들의 사례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정복자들이 아메리카에서 돌아온 뒤로 비교적 서늘하고 비교적 북쪽에 있는 나라들의 농업 생산성이 높아졌다.

이 나라들은 정복자 시대에 얻은 부를 가지고 과학, 농업 집약화, 산출량 증가에 대한 투자를 늘림으로써 더 많은 부를 창출했다.

이 순환은 자기충족적이었다.

농업이 집약적으로 바뀔수록 작물을 값싸게 생산할 수 있었으며, 소규모 자영농이 재배하는 같은 작물의 가격이 낮아졌다.

소농이 수익을 낼 수 없을 만큼 밀갑이 낮아지자 이 지역 농학자들은 자급을 희생하고 수출용 환금 작물로 돌아섰다.

 

미국의 “노먼 블로그”는 “왕복 육종”이라는 개념의 도입을 통해 수확량의 획기적 증가를 가져온 녹색혁명을 이끌었다. 그는 생장속도가 빠른 식물을 충분한 관개와 비료, 살충제를 통해 재배함으로써 이전의 수확량 증가속도를 뛰어 넘는 성과를 남겼다. 그의 이런 개념은 미국식 농업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생태적, 경제적 영역을 만들어 냈다.

 

녹색혁명은 경제혁명이었다. 적어도 수억 명이 혜택을 입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경제적이었고, 농업을 국지적 활동에서 국제적 경제 활동으로 탈바꿈시켰다는 점에서도 경제적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산업적 농업의 역설이 있었다.

녹색혁명 작물은 많은 전통 품종을 교배하여 만들어졌다.

하지만 녹색혁명 작물이 성공하고 보급되면서 바로 그 작물들이 밀려나기 시작했다. 농업의 미래를 지탱해야 할 젖줄이 말라버리게 된 것이다.  

 

새로운 작물은 미국식 농업자본주의에 물든 새로운 생태적, 경제적 영역을 만들어 냈다. 새 농법과 연관된 경제 체제에서는 이미 부유한 경제 주체가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할 수 있었지만, 이와 동시에 농부들은 상업적 종자, 상업적 설비, 상업적 비료와 살충제에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체제에 종속되었다.

신기술을 구입하여 이용할 수 있는 농부는 그렇지 못한 농부들을 밟고 올라섰다.

대부분의 토지에서는 먼 곳에서 온 종자를 재배하게 되었으며, 이와 더불어 농부의 수가 줄면서 현지에 적응한 전통적 품종의 종자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농장의 핵심 요소를 좌지우지하는 기업들이 농부들에게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종자는 물물 교환의 대상에서 고가에 팔리는 제품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녹색의 경제혁명은 결국 다품종의 시대에 있었다면 다양한 방어기제 또한 자생적으로 존재하게 되어 적절한 작물로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소품종의 시대에 접어들며 방어기제 또한 함께 사라지게 되는 결과도 함께 가져왔다

살충제는 해충을 죽이기도 하지만 익충또한 죽이기 때문에 자연생태계의 자연면역(방어기제)을 훼손한다,

방어력이 약화된 작물은 결국 어떤 병균류의 침범에 광범위하게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소수의 거대 농산업 회사들이 생산하는 종자가 농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수록 새로운 해충, 병원체의 이동 및 진화와 기후 변화에 대한 대처에서 이 회사들의 역할이 커진다. 하지만 여느 산업과 마찬가지로 농산업 회사는 순수한 경제적 유인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기에 가장 많이 팔리는 소수의 작물에만 집중한다.

 

그리고 농업의 경제혁명은 생산 작물의 품종과 수량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었다.

결국 농업이 대규모 자본화, 기업화 되면서

예전과 같은 소규모의 농업인들은 설자리가 줄어들게 되었고,

이것은 결과적으로는 농업에 있어 다양한 재배기술과 대응능력의 상실을 야기하게 되고, 새로운 병충해 등의 등장에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개발된 각 종자는 산업계와 협력하여 국제적으로 역량을 집중한 결과다. 대규모 경작을 감당하려면 트랙터가 있어야 했으며, 트랙터를 끌려면 휘발유가 필요했다. 살충제, 비료, 제초제를 비록한 화학 물질도 필요했다. 도로와 철도도 깔아야 했다. 새 농법은 이 모든 요소를 동반했다. 이와 더불어 땅값이 비싸지고 농업이 소수의 손에 집중되었다. 새 농법은 농업을 바꾸고 삶의 방식을 바꾸고 사는 곳을 바꿨다.

 

크리스퍼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주기적으로 분포하는 짧은 회문 반복서열의 약자며,

카스는 크리스퍼와 관계가 있는 단백질의 약자다. 크리스퍼 카스는 종종 기술이라고 표현되는데 사실 크리스퍼의 혁신과 발전을 이룬 것을 과학자들이 아니라 진화다.

크리스퍼 카스는 세균과 고세균에서 진화한 세계로, 세균과 고세균이 자신을 공격하는 바이러스의 DNA를 저장하는 방법이다. 이들은 크리스퍼 카스 체계를 이용하여 숙적의 목록을 만든다. 세균은 적을 만났을 때 목록과 비교하여 일치하면 그 공격자의 DNA를 자른다. 크리스퍼 카스 체계는 정밀 방어 수단이다. 크리스퍼 카스 체계를 이루는 요소들은 다른 생물에서도 특정 부위의 DNA를 자르는 데 쓰일 수 있었는데, 이는 유전자를 편집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현재의 농업경제는 크리스퍼 카스 체계를 통한 숙적을 활용하고 있을까?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산업적으로 생산되는 유전자 변형 작물의 가장 큰 위험은 건강에 대한 것도, 환경에 대한 것도 아니다. 해충과 병원체, 기후 변화로부터 벗어나는 능력에 대한 것이다. 지금까지 유전자 변형 작물은 농업의 단순화를 앞당겼으며, 새로운 해충과 병원체가 우리의 단순화된 작물을 먹는 능력을 진화시키는 속도 또한 앞당겼다. 유전자 변형 작물이 등장한 뒤로 우리는 몇 안되는 작물에 주식을 의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 작물들 또한 똑같은 유전자를 방어 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저자가 존경해 마지 않는 러시아의 바빌로프는 “원산지 이론”을 주창했으며, 종자의 다양성을 보전하고, 유전적 개량(돌연변이와 유성생식이 결합) 등에 기여했다

특히 그는 예로부터 전해지던 전통적 방식의 농업의 보완을 통해 전략적으로 작물을 교배함으로써 육종속도를 가속화 하고, 전통 품종의 도입, 전통 지식의 보전, 전통적 육종과정의 보전을 접목하는 것에 농업의 미래가 있다고 보았다.

 

전 세계 농부들은 야생 식물을 골라 바람직한 형태를 알맞은 방법으로 다시 심어 다양성을 만들어냈다. 농부들이 만들어낸 유용한 신품종은 수천, 어쩌면 수십만종에 이른다. 전 세계 작물은 대부분 한 문화권, 한 마을, 심지어 그 작물을 기른 한 가정에서 비롯했다. 우리가 먹는 모든 작물 종과 품종에는 마을, 사람, 장소의 역사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역사는 대부분 시간에 묻혀 익명으로 남았다. 세상이 연결되고 산업화될수록, 또한 현지의 지식과 농사법이 획일적 접근법으로 대체될수록, 이 품종들이 사라질 것임을 바빌로프는 알았다.

바빌로프는 우리가 의존하는 종을 지키려면 전 세계에서 전통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지식과 그들이 만들어낸 품종을 보전해야 한다. 도한 그 품종들의 역사와 그와 관련된 민족의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 품종들을 활용할 수 있는 과학자와 농부가 있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활용에는 새로운 교배종의 생산이 포함된다. 이 과정은 농부들이 오래전부터 해오던 것과 다를 바 없지만 유전학에서 얻은 통찰이 여기에 접목될 것이다. 또한 이 과정을 앞당기는 새로운 종류의 활용(유전공학)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전통적인 작물 품종과 그 조상들이 진화한 숲과 초원의 기본적인 생물학적 특징을 이해해야 한다.

 

저자는 70억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는 현 시대의 상황에서

농업의 자본화, 대규모 산업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이나, 과거로 회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을 했더라면 과연 그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답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야생의 자연을 보전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하는 것은 타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나 원론적인 대안이라는 점에서 아쉬움과 한계를 보인다고 느껴진다. (각종 활동이 자금 문제에 봉착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기후가 극단적으로 바뀔수록 작물의 야생종 친척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새로운 병원체가 더 많이 나타날수록 작물의 야생종 친척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는 야생의 자연을 보전해야 한다.